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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Review

헤어질 결심 (2022), 영원히 미결 사건으로 남을 그들의 사랑

by Beloo 202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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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헤어질 결심
감독: 박찬욱
출연: 박해일, 탕웨이 등
상영시간: 2시간 18분
관람등급: 15세

오늘 요근래 제일 기대하고 기다리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왔다.

'박찬욱' 감독님의 신작과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인 '박해일'님, '탕웨이'님이 출연해서

개봉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예고편을 보고 나서는 더욱더 기다림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기대하던 영화였다.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너무 만족스러웠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그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여자라는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주제는 굉장히 고전적이면서도 정석같이 보이는 클리셰적인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님의 이런 클리셰적인 요소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어내면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표현했다.

 

나이가 있는 한 남자가 높은 산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을 맡게 된 '해준'은

남편이 사망했음에도 크게 놀라지 않고 오히려 담담해하는

젊고 이쁜 중국인 아내 '서래'를 본능적으로 의심하게 되고

수사를 하면 할수록 그녀에게 더욱 빠지게 되고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둘의 서로 이끌리게 된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그들은 다시 멀어지게 됐다가 다시 한번 마주치게 된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 정도인데, 줄거리만 보면 과연 이 영화가

왜 내가 이렇게 만족스럽다고 표현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은 나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작품은 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연출, 소재, 배우의 연기까지 모든 게 완벽하게 어우러진 영화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우선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말하자면,

'박해일' 배우님은 우리나라에서 누구에게 물어도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답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박해일' 배우님의 순수하면서도 아련한 눈망울이 있는 마스크가

배우로서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형사,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피의자인 '서래'에게 이끌리는 마음과

'서래'의 범죄를 외면하고 오히려 '서래'를 범죄로부터 도망갈 수 있게 도와주는

복잡한 감정을 아주 훌륭하게 연기하셨다.

특히, 형사로써 직업정신이 투철한 '해준'이라는 캐릭터의

마음속 갈등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해줬다.

 

그리고 나는 '탕웨이' 배우님 눈빛의 아련함에 빠진 수많은 팬 중 하나이다.

중국인이라 한국어로 연기하기 힘들었을 텐데도 정말 연기가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고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해서도 다시 그에게로 가는 모습과

잔인한 내면이 숨어있는 '서래'라는 캐릭터를 아련한 눈빛에 잘 담아냈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박찬욱' 감독님은 영화를 봤을 때, 항상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준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스토커' 등

다양한 작품들에서 이야기의 요소들 중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 꼭 있었다.

이번 작품 '헤어질 결심'에서는 비교적 이런 '박찬욱' 감독님의 불편함이 작았다.

'박찬욱' 감독님의 불편함이라는 영화적 장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주며

영화를 보는 몰입감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주는 장치다.

 

'헤어질 결심' 속 불편함이라는 장치는 유부남인 '해준'과

피의자인 '서래'라는 캐릭터 설정에서 드러난다.

비교적 왜 낮은 불편함이라고 이야기를 했냐면, 앞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정말 현실에서 있을 법한 캐릭터 설정이라서 그런 것 같다.

사건을 수사하다가 마주친 여성과 형사의 사랑이 나름 그럴싸한 느낌이 들었다.

 

당신의 사랑이 끝날 때,나의 사랑이 시작되었죠.



'헤어질 결심'은 '탕웨이'가 중국인 배우를 넘어서 영화 속에서도 중국인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의 국가를 다르게 설정함으로써 생기는 언어적 경계가 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헤어질 결심'은 로맨스 영화이지만, 단 한 번도 '사랑한다'라는 대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사를 통해서도 둘의 직접적인 감정이 많이 드러나지 않지만,

이밖에도 대화를 하다가 한국어가 막힐 때 사용하는 '서래'의 번역 어플, 멀리서 훔쳐보기,

스마트 폰과 스마트 워치에 녹음한 자신의 속마음들을 두 주인공은 마지막에 가서야 제대로 확인한다.

이렇듯 둘의 감정은 직접적으로 교감되지 않고 한 단계 이상을 거쳐서 전달된다.

그리고 번역기를 통해 듣는 주인공의 대사는 AI의 음성으로 감정이 가려지고

녹음은 추후에 듣게 되면서 제대로 된 타이밍에 듣지 못한다.

 

이렇게 '헤어질 결심'의 영화의 감정 표현이 여러 레이어를 통해 겹겹이 싸여있다.

스마트 기기가 특히 여기서 중요한 매개체로 사용되는데,

'박찬욱' 감독이 현 시대상을 잘 반영해 만든 로맨스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적인 요소를 가지고 옴에도 이야기에 사용되는 여러 매개체들은 굉장히 현시대적이다.

이런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 요소들이 함께 만나면서 신선함을 만들어내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더욱 이끌어내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누군가에게 슬픔은 잉크처럼 서서히 여운이 퍼져

이 영화는 서로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 외에도

스킨십은 최소화했으며, 두 주인공의 자극적인 장면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두 주인공의 진실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땐, 처음에는 큰 여운이 없었지만,

이 영화의 대사처럼 잉크처럼 마음속에 여운이 서서히 퍼져나가

마음속의 영화의 감동이 아직도 남아있다.

 

'헤어질 결심'은 잔잔하면서도 강한 영화다.

대사 하나하나가 굉장히 힘이 있으며, 그 상황과 캐릭터의 마음을 아주 잘 대변해준다.

'박찬욱' 감독님은 자신이 로맨스 영화를 얼마나 잘 만드는지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로맨스 영화 자체의 새로운 방정식을 보여줬다.

카메라의 무빙부터 영화에 사용되는 매개체까지 다양하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생각해보면 '박찬욱' 감독님은 로맨스 영화를 굉장히 잘 만드시는 분이긴 했다.

 

이 영화는 상징적인 요소들도 많이 존재한다.

산에서 시작해 바다에서 끝나는 영화의 전개와

인자함 보다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바다를 더 좋아한다는 '서래'의 대사부터

여러 대사와 장면들이 허투루 쓰이는 것이 없었다.

이 영화는 '서래'의 한 대사로 딱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대사처럼 둘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으면서도

강하게 끌리고 계속해서 들여다보게 되고 간절히 애원하는 그런 사랑이다.

그리고 영원히 이 둘의 감정은 서로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단서가 될 것이다.

 

나는 당신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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